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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사과먹는사람 2021. 3. 1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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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줄거리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1장부터 이미 주인공 '니키 준페이'의 사회적 삶이 어떻게 끝났는가를 알려주고 시작한다.
1955년 여름, 학교 교사인 준페이는 아무에게도 행적을 알리지 않고 홀연히 사라져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가 외도를 하러 떠났거나 자살한 것으로 의심했지만, 그가 들고 간 짐,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를 본 역무원의 증언상 곤충 채집을 하러 떠났음이 너무나 명확한 상황이었다.
7년이 지나도록 준페이는 돌아오지 않았고, 1962년에 끝내 실종자 판결이 난다.

학교 교사인 그에게는 희귀한 곤충을 채집해 그 곤충에 제 이름이 붙은 학명을 남기고자 하는 평생의 포부가 있었다. 그는 여름 휴가를 이용해 인적이 드문 해안가 마을로 떠난다. 그가 아무에게도 행적을 알리지 않은 이유는 베일에 싸인 신비로운 휴가를 연출하기 위함이다.
그가 도착한 마을은 도처에 깔린 모래가 쉴새없이 흐르는 사구 마을이었다. 마을의 집들조차 모래 구덩이 안에 있다. 첫날 채집에서 허탕을 친 그는 해안가 마을에서 잘 곳이 없어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어떤 과부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과부의 집 역시 새끼줄 사다리 없이는 내려갈 수도, 올라갈 수도 없는 깊은 구덩이 안에 지어져 있다. 집 안에도 쉴새없이 모래가 퍼붓는다. 식사를 할 때면 밥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도록 여자가 우산을 받쳐주고, 잠을 자는 밤에는 여자가 모래를 삽으로 퍼내러 간다.
다음 날 그가 잠에서 깼을 때 사다리는 걷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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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은 그에게도 부삽과 모래를 파낼 통을 준다. 하지만 준페이에게는 이대로 사회적 인생을 마감할 생각이 결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을 사람들을 설득, 회유, 협박하는 등 갖은 수단을 다 써서 탈출하려고 애쓴다. 일하지 않고 아픈 척 꾀병을 부린다. 여자를 인질로 잡아 마을 사람들을 협박한다. 로프까지 만든다. 하지만 그가 시도한 모든 방법이 실패한다.

 

거기서 지내는 몇 개월 동안 그는 서서히 변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일례로 그는 마을 사람들이 갖다준, 뭐가 딱히 웃기지도 않고 내용도 없는 만화를 보고 배꼽이 빠지라고 웃는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한통속인 여자를 미워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여자를 동정하기도 하고, 여자에게 끌리기도 한다. 그는 탈출하면서 자신이 여자를 배신하는 건 아닐지까지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탈출이 실패하고 다시 여자의 집으로 돌아온 그는 우연한 기회로 사구 안에서 물을 저절로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어 유수 장치를 만들게 된다. 그것을 일단 비밀로 간직하기로 한 그는 밤낮으로 여자를 도와 모래를 파낸다. 여자는 구슬을 꿰는 부업을 시작하고 그녀가 그렇게도 갖고 싶어하던 라디오를 사게 됐다.

소설 말미에서 여자는 준페이의 아이를 임신하는데, 자궁 외 임신으로 인근 병원으로 가게 된다. 여자가 병원으로 떠나고, 그는 마을 사람들이 걷어가지 않는 새끼줄 사다리를 본다. 타고 올라가려다가, 유수 장치가 비뚜름하게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유수 장치를 똑바로 고쳐 둔다. 그는 이제 이 장치를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모래 구덩이 안에 들어앉아 생각한다. 도주 수단은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고.

 



원래 일본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몇 쪽만 읽어봐도 아는 그 묘한 일본 번역체 말투를 안 좋아해서 영화화된 소설('화차', '용의자 X의 헌신' 같은 책들) 말고는 거의 안 읽었다. 그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 책도 한 권 안 읽어봤는데, 겨울 동안 영미 소설을 많이 읽어서 아시아권 소설도 좀 읽고 싶어서 빌려 봤다.

솔직히 말해 '모래의 여자'는 여태까지 읽어본 일본 소설 중에 최고다.
한 문장 한 문장 읽는데 소금기를 머금은 찝찝한 모래가 온몸에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기 갇혀 탈출을 시도하는 남자의 정신적인 변화와 옛 기억을 회상하는 묘사도 세밀하다. 컨셉도 독특하고.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소설인데 그래서인지 더 끔찍하다(...). 너무 진짜 같아서... 끝없이 삽질을 해야 한다는 건 시지프스 신화를 연상시킨다. 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지독하다. 이미 처음부터 남자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되었는가를 알고 봐서 충격이 덜할까 싶은데 절대 그렇지가 않다.

바깥 세상과 절대 통할 수 없는 환경에 갇혀, 매일 그 날만을 위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나의 몸과 정신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모래의 여자' 속 주인공 니키 준페이의 변화가 어느 정도 답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아 제목이 '모래의 여자'니까 모래 구덩이 속에 사는 여자 얘기를 하자면...
여자는 이름이 없다. 준페이는 이 여자와 밥도 먹고 잠도 자지만 이름은 끝까지 안 나온다. 사실 준페이 자신도 소설의 처음과 끝, 그저 그의 신변에 대한 공적인 처분이 이뤄질 때만 이름이 나올 뿐이지 마을에 갇혀 있는 동안은 줄곧 '남자'로 퉁쳐진다. 호칭과 상황이 결합되면서 은은하면서도 음침한 에로티시즘을 자아낸다. 
사실 여자는 철저하게 준페이 시선에서 봤기 때문에 여자의 진짜 속내는 어떤지 알 턱이 없다. 다만 남자가 당신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 바깥 생활이 그립지 않느냐 물어봤을 때의 여자의 대답으로 유추는 해볼 수 있다.

그렇다 여자는 이미 순응한 거다. 인생이 이렇다는 걸...... 구덩이 안이나 밖이나 다르지 않고 내 인생은 여기 있다는 걸......

역자 김난주 선생님께서 첨언하신 설명에는, '모래의 여자'는 생존이 어려운 모진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곤충을 채집하기 위해 떠난 남자 자신이 곤충이 되어 버리는 이야기라고 한다. (변신?) 곱씹을수록 이만한 한 줄 요약이 없다. 무섭다.



실용적인 후기를 남기자면,
요즘이야 세상이 많이 좋아졌지만, 휴가 갈 때는 가족이나 신고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꼭 어디 가는지 얘기하고 가자... 하는 거다.


무서운데 한편으로는 빠져드는 책이다.
나중에 생각나면 사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4/5

 

모래의 여자 - 교보문고

'요미우리 문학상', '프랑스 최우수 외국문학상' 수상작. 곤충 채집을 하러 떠났다가 여자 혼자 사는 모래 구덩이에 갇히게 된 남자. 흘러내리는 모래에 집이 파묻혀 버리지 않도록. 그는 매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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